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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① ‘대기업 차장, 그녀는 왜 사표 던졌나? 여성들의 끊임없는 고민과 숙제... | 이슈N칼럼 | 소통/공감 | 성남복지이음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① ‘대기업 차장, 그녀는 왜 사표 던졌나? 여성들의 끊임없는 고민과 숙제...

아이위해 사표, 육아 때문에 재취업도 어려워
▲ 실직, 임신과 출산 등  4편의 단편이 모인  영화 '가족 시네마' 포스터
여성들의 끊임없는 고민, 풀리지 않는 숙제는 일과 육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책임지는 엄마들이 늘면서 알파맘, 슈퍼맘, 워킹맘 등 다양한 ‘◯◯맘’용어들이 등장했다.

그만큼 여성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넓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과 육아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일하는 여성들이 두가지 모두를 제대로 해내기는 버거운게 현실이다.

경향신문 25일 2013 여성 일자리 보고서를 통해 ‘여성일자리’관련 특별취재 기사를 실었다.

대기업 차장으로 일하던 그녀.
전업주부를 선택한 조수인씨의 이야기는 일과 육아사이에서 어려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당당했다. 자녀 때문에 정면 사진은 꺼렸지만 움츠리지도, 숨지도 않았다. 

조수인씨(가명), 38세. 초등 2년생 아들을 둔 엄마다. 2009년만 해도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직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7년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냈고, 국내 굴지의 재벌계 해운사에 입사했다. 여성 공채 2기. 당시 입사자는 총 60명. 이 중 여성은 9명이었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전체 1등을 하고 고위 임원 비서실로 발령받았다. 2년 뒤 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해운사의 영업직은 화물주인 글로벌 기업과 서비스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업무는 적성에 맞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해운기업,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자부심도 컸다. 입사 4년 만에 대리. 남자 직원들과의 경쟁 끝에 2002년부터 2년간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영업실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현지에서 과장 승진. ‘여풍’이 보통명사화되면서 회사 고위층에서 여성 임원을 만들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첫 여성 임원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2004년 싱가포르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결혼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출산·육아휴직 6개월을 신청했다. 당시 법이 규정한 기한은 1년.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갈 무렵 회사에서 복직 시점을 묻는 연락이 왔다. 나머지 3개월을 쉬고 복직하겠다고 답변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평가가 있었다. 등급 F에 연봉 250만원 삭감. 팀원 12명이 아무리 일을 못했어도 쉬다 온 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출산의 대가는 가혹했다. 팀에서 누군가는 F를 받아야 한다면 희생할 수밖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듬해는 차장 승진 시기였다. 남자 동기들은 예외 없이 승진했지만 누락됐다. 사규상 출산·육아휴직 6개월을 쓰면 고과에서 3점이 감점된다.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 후배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해 해당 사규를 없앴다. 그리고 동기들보다 한 해 늦은 2007년 차장을 달았다. 

회사가 달리 보였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직원에게는 중요한 업무가 덜 가고, 육아 때문에 퇴근을 일찍 하거나 회식에 빠지는 여직원들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 스스로도 위축됐다. 말로만 듣던 유리천장이었다. 글로벌 기업이란 말은 허울처럼 여겨졌다. 금융위기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2009년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고민에 빠졌다. 자녀 양육은 시부모에게 맡기고 오전 6시30분이면 출근해 오후 8시가 돼야 퇴근하는 시절. 아이 때문에 고생하는 시부모, 바쁜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 공무원인 남편은 아이를 챙길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내가 그만두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일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만큼 내 아이는 꼭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직장에서 버티면서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려면 아이가 아플 때 모른 척해가며 밥먹듯 야근을 하고 술자리에 가야 한다. 그렇게까지 희생하면서 올라가야 할까. 나의 출세와 아이의 어린 시절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을 내렸다. 사직서를 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입사했던 여자 동기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모두 가정주부로 바뀌었다.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일에 대한 열망에 비정부기구(NGO) 같은 곳에서 보람 있는 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1년 쉬고 비정부기구 입사시험을 봤다. 면접관은 대기업을 그만둔 이유를 물었다. 육아 때문이라고 답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

시의회에서 계약직 보좌관 일을 1년 했다. 집 근처였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에는 퇴근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지난해에는 다국적기업 사회공헌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며칠 출근했지만 종일 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포기했다. 현재는 전업주부로 지내며 이따금씩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한다.

퇴직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  

다만 가끔은 당시 조금만 더 버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쯤 부장이 됐을 것이다. 그룹 오너가 여성인 회사지만 사내에 아직 여성 임원은 없다. 아이도 어떻게든 컸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되돌아갈 수 없는 선택이지만 때론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201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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